2018년 6월 22일 금요일

김해 대동면 산해정(신산서원)


조선의 유학자는 그 파벌이 있어서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목숨이 오락가락 하기도 했다. 당파싸움의 근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크게 봐서 벼슬에 나간 파와 그렇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매진한 파로 나눌 수도 있다. 당파싸움은 벼술에 나가 이들의 파벌이니 보다 근본적인 분류가 되는 셈이다. 초야에 묻혀 오로지 학문에만 매진한 대표적인 사람이 남명 조식 선생이다. 선생은 경남 산청 출신이다. 그래서 산청에는 조식 선생의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 김해 대동면의 산해정은 조식 선생의 처가가 있었던 동네에 장인의 힘을 빌어 세운 서당으로  선생이 비교적 젊은 시절인 30대 초반에서 20년 가까이 공부를 하면서 제자 가르침에 매진했던 곳이다.
나와 같이 대학의 같은 과에서 공부했던 한학자인 허권수 형은 남명 조식 선생의 학문적 진리에 가장 근접한 현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 허 형이 이 산해정 입구 대문 앞에 조식 선생의 한시를 번역해서 비에 새겨놓은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같이 공부했던 동문으로 어깨가 어쓱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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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돈 들여서 만든 것 같은데 명물이 되기는커녕 존재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