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8일 금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가산리, 월산리(UHD)

하늘에서 본 밀양 - 밀양종합운동장 주변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동면 안인리(UHD)



아내가 상동중학교에 근무할 무렵인 1990년 초에는 안인리 앞으로 해서 유천으로 가는 도로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가곡-평능-유산마을 거치는 국도를 따라서 내 새차 르망으로 태워다주고 태워오는 일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안인교가 세워지면서 신작로가 생겨 길이 많이 단축되었다. 더불어 매일, 신안, 안인 사람들 교통이 엄청 좋아졌다. 그 전에 안인초등학교 학생들은 상동중학교로 진학을 했을 터인데 그땐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 지 궁금하다.
내가 밀성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내 반 아이가 폭우로 물이 불어 학교를 올 수 없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사는 동네는 안인리 신안마을이었다. 나는 신안이라는 동네가 긴늪 다리 건너 지금의 상동면 가곡리 쪽에 있는 줄 알았다. 신안은 밀양강 이쪽 시내 쪽인데 강물이 넘쳤을까?
둑이 보완되고 들판이 바둑판처럼 정리가 된 지금은 매일, 신안, 안인 이들 동네들은 참 풍족한 동네로 보인다. 상동 빈지소 철교를 지나서 마을 앞으로 직선으로 내달리는 경부선 기차 소리만 좀 조용해진다면 조용하기까지 한 동네가 될 듯.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용지리

2017년 7월 26일 수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춘화리(UHD)

하늘에서 본 밀양 - 무안면 운정리, 마흘리(UHD)

하늘에서 본 밀양 - 무안면 정곡리



내 고향에는 택호가 정곡댁도 있었고, 솥질댁도 있었다. 정곡이나 솥질이나 같은 동네임을 이제서야 알게 된다. 정(鼎)이 솥이란 뜻이고 곡(谷)은 골 즉 실이니 정곡은 솥실의 한자어 표기이고, 솥실은 발음상의 편의를 위해 소리를 바꾸어 소칠 > 소찔 > 솥질이 되었을 거다.
무안에서 밀양으로 내달리다보면 오른쪽으로 정곡 이정표가 나온다. 그러나 기실 정곡은 오른쪽이 아니고, 오른쪽의 신화마을을 지나, 무덤골(단장)도 지나고 응달로 들어설 즈음 왼쪽에 주유소가 있는 삼거리 길에서 왼쪽으로 빠져 운정천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동네가 솥질 즉 정곡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취업지원관으로 몇 년째 근무하고 계시는 분의 고향이 이곳 정곡의 무덤실이라고 한다. 영상을 올리고 난 뒤에 댓글로 드론이 무덤실을 비켜갔다고 섭섭해 하시더라. 아이폰 작은 모니터로 들여다보고 대낮의 콘트라스트가 약한 화면으로 인해 조정을 하다보면 놓치고 지나치는 작은 동네들이 제법 있다. 이 동네들도 담아두어야겠기에 내 스스로 만들어내는 숙제들이 자꾸만 쌓여가고 있다. 다시 촬영한다 해도 원래 영상을 꺼집어내어 추가 편집을 해서 다시 렌더링을 해야하고, 업로드된 영상들을 내리고 다시 올리고 하는 작업까지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일들이다.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동면 매화리, 고정리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동면 신곡리




밀양의 전체 땅넓이는 서울보다 더 넓다. 그래서 밀양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거리는 상당하고, 심리적 거리는 더 멀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로 돌아간다면 북쪽 끝인 산내면 얼음골계곡 사람과 남쪽 끝인 하남읍 명례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한번 만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위도상으로 북쪽 끝인 얼음골 호박소 인근보다는 나에게 더 북쪽으로 느껴지는 곳이 상동면 신곡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호박소나 얼음골은 가보고 싶고 가봐야 할 명승지이지만 상동면 신곡리는 그런 매력이 없는 동네이다보니 가보고 싶은 마음도 가봐야 할 의무감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네가 가봤어야 할 동네임이 이번 탐방에서 드러났다. 네이버 지도를 보다가 발견한 것인데 '경주이씨 문중'이란 표식을 지도에서 발견한 것이다. 내 본관이 그렇다보니 내 뿌리를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가서 사적을 알아봤어야 하는 곳이다. 지척에서 드론을 띄우면서도 나는 그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기실은 고정리를 담으면서 고정리를 지나 골짜기 깊숙히 있는 도곡리라는 동네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영상을 찍지 못했다. 어차피 도곡리를 한 번 더 가야할 판이니 그 때 신곡리를 다시 찾아 나의 뿌리와 관련되는 유적을 확인해볼 일이다. 


2017년 7월 20일 목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명성리 신포동



이 영상으로 '상공에서 본 밀양' 시리즈 중 초동면 편을 끝낸다.
모든 마을을 다 담으려는 애초의 의도는 시간에 쫓기고 계획의 부실이 겹쳐 중복되고 정리 안된 면이 많다.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하자니 그 구역과 상관없이 마을이 인접해 있는 경우가 있어 중복이 되고, 공중에 날아오른 드론을 조그마한 폰 화면으로 보고 조종을 하다보니 놓쳐버리는 작은 마을도 종종 있었다.
초동면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초동저수지를 중간에 놓고 보면 사방으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자그마한 산들이 그 넓은 들에 큰 논두렁 쌓듯이 이어져 있다. 마을들은 논두렁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고. 하남들만 넓은 줄 알았더니 초동들도 하남들 못지 않다.

이 작업은 작은 출발에 불과하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하늘에서 내려와 마을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볼 참이다.
동네를 지키고 있는 촌노들이 외지 사람을 구분하고 어찌, 무엇을 하러 왔는 지 궁금해하며 기웃거릴 시간도 그리 많지 않아보여 마음이 바쁘다. 부분적으로 마을의 공동화 현상이 생기고 있으며, 화면에서 사람 보기가 쉽지 않음이 바쁜 마음을 더욱 졸이게 한다.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금포리, 두암동, 검암리, 초동저수지



금포리를 담기 위해 초동면을 다시 찾아간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 미리 지도를 살펴보고,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얻어서 금포리를 겨우 찾았다. 수산에서 부곡으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 바로 옆에 있는 동네인데도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부곡 쪽으로 가다가 성만리로 빠지는 교차로로 나와서 다시 90도 좌회전해서 4차선 도로를 관통해야 하는 길이다.

금포 쪽에서 시집을 온 우리 집안의 형수뻘 되는 분이 있다. 그 형님과 형수는 이미 작고하셨지만 생전에 우리 집안에서는 대단한 유지급이었다. 금포형님의 형수가 자랐던 동네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 금포리는 위세가 형수님만큼은 아니어서 실망. 금포리 서쪽으로 언덕길을 넘으면 검암리 앞들이 나온다. 검암리는 본 동네에서 수산 쪽으로 도로를 따라 쭉 이어지다가 다시 성북 쪽으로 야트막한 고개를 넘어 연결된다. 자연 부락이 여럿이고 고개를 넘어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검암리 왼쪽으로 해서 산속으로 들어가면 성북 쪽에서도 접근이 가능한 객금이라는 마을이 있다. 산중에 있어 바깥에서는 거의 인지가 안되는 무슨 요새같은 느낌의 동네다. 다음 그림을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이런 지형상의 특이점 때문에 모래들 쪽에서 이번 촬영을 하고, 성북, 검산 쪽에서 촬영을 해 결과적으로 두 개의 영상물이 만들어졌다.

이런 사정은 검산 맞은 편 명성리도 마찬가지다.
명포와 성암의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인 명성리는 정작 명포와 성암 사이에 고개가 있어 내왕하기가 싶지 않았을 것 같다. 동력이 없어 인력으로 움직이던 예전에는 야트막한 고갯길도 쉽지 않은 행로이었을 것이다. 여기도 들판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있는 뚝남과 신호리를 묶어 행정구역을 정했으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다.

하늘에서 본 밀양 - 삼랑진 트윈터널

2017년 7월 19일 수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신월리, 범평리, 오방리, 명성리 성암, 반월리



드론으로 밀양을 담으면서 실감하는 점인데, 몇 개의 부락을 묶어 행정구역을 리 단위 혹은 읍, 면 단위로 나누어놓은 것이 현재의 도로 사정과 맞지 않은 점을 종종 발견한다.
이곳 범평리와 오방리는 굳이 나눌 필요가 있을까 싶고, 이웃해 있는 명성리는 명성리 본 동네인 명포 마을과 명성리 성암마을은 성암마을이 명성리 신포마을과 나즈막한 고개를 사이에 두고 있긴 하지만 차라리 범평리, 오방리와 내왕하기가 더 편리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현재와 동떨어진 행정구역의 대표적인 예는 하남읍 남전리이다. 남전리는 하남과 제법 높은 산이 가로막혀 있고 직통하는 찻길이 없다. 그런데도 과거에 고개를 너머 대사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대로 하남읍에 속해 있다. 인근 동리는 초동면 혹은 상남면에 속해 있고, 지금 이 동네에 아동이 있다면 상남초등학교는 초동초등학교로 다니는 것이 수산초등학교보다는 거리상으로 더 가깝다.
도보 위주로 다니던 과거와 차량을 이용하는 오늘날은 구역 나누기의 개념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늘에서 본 밀양 - 삼랑진읍 용성리, 청학리



삼랑진읍 용성리, 임천리, 청학리 쪽은 내게는 많이 생소한 동네들이다. 방문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옛 밀양대학교가 부산대학교로 통합이 되면서 캠퍼스를 청학리로 옮겼는데 이는 밀양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도시 발전의 큰 주춧돌을 내버린 것이나 다름 없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곳이지만 사람이 모이고, 그에 따라 경제가 움직이는 중심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각종 고급 문화행사가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밀양시민들은 소중한 문화를 빼앗긴 격이 되어 버렸다. 송학리로 옮겨가고 난 뒤의 구 밀양대학교 캠퍼스는 잡풀들이 무성하고 거미집이 사람의 출입을 막은 채로 여태까지 방치되어 있다.
과거에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과 관련해서 구 밀양대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시험마저도 교통 문제로 시내 학교로 옮겨버려 더더욱 청학리 쪽은 갈 일이 없어졌다.
가곡동에서 임천을 거쳐 삼랑진읍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갯길이 대부분이고 길의 굴곡이 심해서 차라리 평촌으로 해서 들판길로 혹은 고속도로를 통해 삼랑진으로 가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하다. 근래에 들어 고부랑길을 내버리고 산을 파헤치고 굴을 뚫어 큰길을 내고 있긴 하지만 그런다고 내 인상과 의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늘에서 본 밀양 - 남포리, 삼랑진읍 임천리, 숭진리


꽤 오래 전의 일인데 직원 회식을 남포리에 자주 갔던 기억이 있다. 거기에 닭백숙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서 일부러 거기까지 가곤 했는데 요즘도 그 집은 성업 중인 것을 확인했다. 남포란 이름은 예전에 배를 대던 포구였기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지금은 밀양강을 따라 짐을 싣고 내왕하는 배가 없어서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동네는 가파는 강기슭에 형성되어 있어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좋지만 마음은 여유롭지 않다. 집터는 차를 댈만한 공간이 거의 없이 닥지닥지 붙어 있고 앞,옆집과의 높낮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밀양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이 있었지만 임천 사람 몇 사람과는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내 초등학교 동기 여식이 시집을 가서 남편이 된 사람인데, 동창회를 핑게대고 밀양 교외에 있는 집을 방문해서 고기를 구워놓고 술을 한잔할 정도로 각별했던 사이였다. 한 때 그 분이 활동하는 봉사활동 단체의 행사를 비디오로 촬영하고 편집해주기도 했다. 그 분과 숭진초등 동기동창인 다른 분도 인연이 닿아 같은 운동(골프)으로 교분을 쌓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분들이 자랐던 동네와 집은 알지 못한다.

2017년 7월 18일 화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봉황리, 덕산리



내 느낌으로 봉황하면 왠지 오지같은 느낌, 내왕하기 어려운 격리된 지역이란 인상이 강했다. 조선 초기까지 이곳은 특수 수공업 집단이 살면서 공물을 만들어 바쳤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이야기와 상관없이 신작로에서 벗어나 있는 외딴 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 영농가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어 이 외딴 곳에 허브 농장을 만들고 이를 효율적으로 광고해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소요 내지 휴식 공간이 되었다. 종남산 산자락 아래에 있는 방동 마을은 지금처럼 도로가 나기 전에는 밀양의 오지 중의 한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밀양에는 오지 마을이 몇 군데 있다. 남산 구배기, 산내 오치, 단장 고례의 평리 마을 등이 그곳이다. 삼랑진 양수발전소 윗댐 근처의 안촌, 그 맞은 편 행촌도 오지긴 오지다. 물론 지금은 도로가 잘 뚫려 있어 접근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이곳도 이런 곳에 못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수산에서 초동면사무소가 있는 범평리, 오방동 못미쳐서 오른쪽 골짜기로 들어서면 덕산리를 만난다. 제법 넓은 들 양쪽 산자락 쪽에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문득 앞에도 산이 가려져 막막해질 무렵에 봉황리가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한 느낌마져 드는 이곳이 변하고 있다. 허브농장 때문 만은 아니다. 전원 주택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외져서 오염되지 않은 탓일까?
나와 한때 컴퓨터 관련 동호회에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던 후배도 이곳에 조그마한 간이주택을 가져다 놓고 텃밭을 일구며 재미나게 살고 있다.

하늘에서 본 밀양 - 하남읍 남전리, 초동면 성만리 소구령



시골에는 예전부터 시집온 여자를 부를 때 택호라는 것을 썼다. 진주댁, 마산댁 등으로 말이다. 내 고향에는 아직도 택호로 특정 집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택호가 분명 동네 이름일 터인데, 정작 그 동네가 어디에 있는 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나의 어머니는 조동댁인데 조동이 어디에 있는 동네인지를 여지껏 몰랐다. 조동은 남전 못미쳐 상남면 조음리 본동네를 지칭하는 것인데, 정작 나의 어머니의 조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청도면 조천이 친정인데 조천댁이란 택호를 이미 선점한 분이 있어서 비슷한 다른 이름을 붙인게 아닌가 한다.
내 작은 어머니의 택호는 다만댁인데, 여기 보담마을이 친정인 줄 알고 있다. 그런데 다만은 또 어디인가 했더니 '밀양지명고'에 보담마을 인근의 지명으로 지금은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작은 어머니는 꽤 먼 곳에서 시집을 오신 셈이다. 예전에는 이곳 보담 동네도 교통편이 내 고향 무안면 웅동리만큼 편리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니 말이다.
야트막한 산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이곳 하남읍 남전리와 하남읍 대사리 혹은 귀명리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자존심 경쟁이 있음을 드론 촬영 중에 느꼈다.
대사리 쪽에 사시는 분은 남전리 사람들이 학교도 없어서 고개를 넘어와 대사초등학교를 다녔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의 이면에는 대사리가 남전보다는 보다 크고 발전한 동네라는 뉘앙스가 들어 있었다.
반면 남전리가 고향인 분은 대사리 앞들이 제 아무리 넓어도 그 주인은 남전리 사람이었다고 한다.
행정구역상으로 북서쪽은 초동면, 남동쪽은 상남면이고 이 두 영역이 이어지는 골짜기의 가운데 있는 남전리는 하남읍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순전히 자존심 외는 달리 실리가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선의의 경쟁보다는 비교 우위의 명분을 찾는데 치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영상을 다 만들어놓고 업로드까지 했는데 남전이 상남면이 아니라 하남읍인 줄 알았다. 자막을 모두 고치고 다시 업로드했다.

2017년 7월 17일 월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검암리, 반월리, 대곡리

하늘에서 본 밀양 - 하남읍 수산리(UHD)



밀양에는 행정구역상 '읍'에 해당되는 곳이 2곳이 있다. 하남읍과 삼랑진읍이 그곳인데, 이 두 지역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과 물건이 모이던 곳이었다. 둘의 공통점은 낙동강 강가에 있다는 점. 하남은 삼랑진에 비해 아주 넓은 들을 끼고 있어 농산물의 집하장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산으로 유학을 갔다. 가끔씩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올 때면 이 수산을 반드시 거쳐야 했다.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탔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버스 정류장이 그 자리에 남아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사람도 차도 많이 뜸하다.
하늘에서 보니 의외로 도심에 빈터가 많다. 계속 번창했더라면 건물들로 가득해야 할 것인데 이 도시는 어느 순간 발전이 정지된 듯하다.

하늘에서 본 밀양 - 초동면 성만리, 신호리, 범평리



촬영에 이용하고 있는 드론은 DJI사의 팬텀4 프로 버전이다.
그런데 이 기기가 종종 동영상이 초점이 맞지 않은 듯한 흐린 영상을 담아낸다. 이 영상처럼 말이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검색을 해봐도, 설명서를 봐도 알 수가 없다.
단지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보면 날씨가 흐리거나 어두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렌즈의 밝기가 어두운가 보다.
그렇다면 ISO를 조절하는 수밖에 없는데 ISO 설정은 기본값으로 자동으로 맞추어져 있다. 이 값을 수동으로 바꾸어 감도를 높여서 촬영해보아야겠다. 그런데 드론을 꺼내면 날리는데 급급하다 보니 매양 확인하는 과정에서 뒷통수를 긁적인다.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하남읍 귀명리, 양동리



예전에 학교에 같이 근무한 젊은 친구 중에 '양동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마산 쪽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하루는 앞서가는 트럭이 딸기 '양동이'를 가득 싣고 가고 있었단다. 뒤따르는데 잠시 후에 나타난 길가의 이정표가 '양동리'더란다. ㅎㅎ.
양동리는 밀양의 공단 중에서는 제법 오래된 공단이다. 변변한 공장이 없는 밀양에는 사포공단이 그나마 공장들이 좀 있었고, 그 다음이 양동리의 양동농공공단이었다. 컴퓨터로 해서 알게 된 사업가 중에 한 분이 이곳 공단에 사업체를 둘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에 들었지만 내가 그 공장을 찾아갈 마땅한 핑게거리가 없어서 지금껏 가보지는 못했다. 언제가 기회를 만들어 가봐야겠다. 공장 방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고 싶다.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예림서원(HD)



지금의 서구식 학교 제도가 일본 식민지 시절에 도입이 된 것이라면 그 이전 즉 조선시대까지 공적인 교육 담당 기관은 서원과 향교라고 할 수 있다.
서원은 사립학교, 향교는 공립학교라고 보면 될 듯. 향교가 서원보다 조금더 역사가 깊으며, 서원은 사림이니 뭐니 하면서 소위 붕당을 만들어내어 파벌끼리 살벌한 싸움까지 벌인 소위 요즘 말로 하면 적폐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유학의 대가들이 학문적 기반을 닦고 그 제자들이 깊이를 더해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밀양에는 사림의 원조격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있다. 벼슬을 하지 않음을 하나의 미덕으로 여겼던 당시 유림들의 소신과는 달리 벼슬을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조선 최대의 사화 중 하나인 무오사화의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합천 삼가의 남명 조식 선생과 극단적인 대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제대리, 사포리(HD)



밀양에서 무안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예전부터 날띠고개라고 했다. 고갯길이 험해서 끔찍한 교통사고가 빈번했던 길인데 이 고갯길의 초입에 있는 동네가 제대리 못골이다. 버스가 내왕하기 전에는 못골을 지나 한골 옆으로 해서 고갯길로 올라 무안 쪽으로 넘어가면 마흘리 백안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나는 이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본 적은 없다. 버스를 이용했다.

무안면에서도 골짝 중 골짝인 웅동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내게는 밀양이라는 동네가 꼭 가봐야할 버킷리스트 중 1순위 도회지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에 처음으로 밀양 시내, 그것도 한가운데인 영남루를 사생대회 참가한다고 가 본 나는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무안에서 밀양이 아닌 밀양에서 무안으로 가는 여정으로 바뀐 삶을 살게 되었다.
길이 하도 험해서 덜컥거리는 천일여객 만원 버스에서 수십 번을 내동댕이를 쳐지다시피 해서 겨우 날띠고개를 넘으면 여정의 클라이막스는 끝나는 셈이었다.
초긴장의 시작점인 제대리 못골은 그래서 참 미운 동네였다. 또한 한골 사람들은 같은 골짜기인데도 복받은 동네라고 생각했다.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운전리, 덕곡리, 청운리(UHD)



운전리는 내게 국수집과 한때 컴퓨터 관련 동호회를 같이했던 지인의 집으로 기억되는 동네다.
국수집 아지매는 늘 자기네 국수 국물이 진국이라고, 아무도 흉내 못내는 비법이 있다고 자랑을 해댔었다. 국수를 즐기는 나는 점심시간 외출을 고양이눈으로 바라보던 관리자들의 눈을 피해서 자주도 갔었다. 별다른 이유없이 얼마쯤 발을 끊었는데 그 집의 맛이 변했다는 둥, 육수 핑게로 밥보다도 가격이 바싸다는 둥, 쓸데없는 메뉴를 추가해서 본래 국수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둥 하는 좋지못한 이야기들이 떠돌더니 결국 그 집이 없어지고 말았다.
지인은 컴퓨터 동호회(밀양멀티미디어연구회)를 같이 했던 비슷한 연배인데 손재주가 비상했다. 전공인 그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목공이면 목공, 낚시면 낚시 등 손을 쓰는 일에는 그 솜씨가 프로였다. 인간적으로도 절친해서 삼겹살 몇 점 사들고 가면 숯불을 피워 구워주기도 했다. 고기 굽는 일도 손으로 하는 일이라 다른이보다 훨씬 맛있게 구워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운전리에 살고 있는 줄 아는데 못 만난 지 꽤 오래된 것 같다.

덕곡리는 또다른 지인이 이 동네 깊숙한 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고 해서 구경삼아 들러본 기억이 있다. 부동산에 눈이 밝아 재테크를 제법 했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고,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도 있고 해서 답사삼아 가봤지만 내게는 썩 내키지 않은 지세를 가지고 있어 다시 가본 적은 없다.

청운리는 밀양연극촌 인근에 있는 동네인데 그 이름이 참 좋다. 어쩐지 훌륭한 인물들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동네가 생각보다 크다. 하긴 부북의 그 넓은 들을 감당해내려면 사람이 많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2017년 7월 9일 일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부북면 감천리, 오례리(UHD)



오랫동안 큰 변화가 없던 수구의 고장 밀양이 큰 변혁을 맞이하고 있다.
삼문동 시가지(밀양중학교 주변)와 내이동의 동가리 신작로로 대변되는 밀양 시내의 미로는 몇 년 사이 많이 정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정비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손가락으로 빗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 머리 깎고, 참빗으로 빗듯 큰 변화가 예견되고 있는 곳이 감내 들판이다.
공단이 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 설왕설래했는데, 계획 승인이 떨어졌고 2017년 7월 중으로 토지 보상 협상에 들어간다고 한다. 무안 넘어가는 날띠고개 초입에는 성토를 위한 산깎기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다.
한때 대전보다 더 컸고, 영남의 중심 도시였던 밀양이 발전과는 동떨어진 정체를 보이다가 이제서야 변모를 시작하고 있다.

2017년 7월 6일 목요일

밀양의 옛모습(2)



밀양은 역사의 고장이다. 삼한시대부터 이어져 온 밀양의 유구한 역사는 각종 기록을 통해서도 입증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로 들어오면서 밀양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발전의 궤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안길에서 서성이는 형국이 되었다. 한밭 즉 대전이 거대 도시가 되어 있는데 그와 비슷하거나 더 큰 세를 지녔던 밀양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웅변하고 있다.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밀양의 아날로그적인 유산을 디지털화해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절박함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그런 심정으로 작업한 것이 밀양문화원에서 발간한 밀양지명고를 컴퓨터 파일화한 것이다. 물론 나 혼자의 힘이 아닌 밀양멀티미디어연구회 회원의 도움이 컸다.
이 자료는 애초의 제작 의도에 맞게(?) 많은 사람들이 퍼가서는 원래 파일 제작자나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공유되고 있다.
우리 밀양멀티미디어연구회에서 처음 만든 자료는 원래 밀양멀티미디어연구회 홈페이지에 탑재되었으나 연구회 홈페이지 서비스를 어느 날 갑자기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될 상황이 생겨 한동안 묵혀두었다가 지금은 다음 카페의 밀양멀티미디어연구회에 다시 싣고 있다.
http://cafe.daum.net/my-multi/UAUt

이 동영상은 여기저기 산재해 있던 밀양의 옛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를 오랫 동안 검색, 수집한 것들 중에서 골라서 편집한 것이다. 자료의 원본 제작자와 출처를 알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깝다. 상업적 의도는 전혀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결례를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2017년 7월 5일 수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표충사

하늘에서 본 밀양 - 밀양시 교동

하늘에서 본 밀양 - 하남읍 파서리, 대사리



드론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되다보니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관심이 꽤 많다. 그분들은 대부분 이미 농약살포용 드론에 감명을 받은 바가 있다.
이번에는 드론을 가지고 뭘할까 하는 호기심으로 드론을 띄우고 있는 내 주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들곤 한다.

하늘을 두리번거리면서 '드론 어디 있수?'라고 말을 걸어온다.
매번 받는 질문이라 이제는 이렇게 대답한다.
'작아서 안보여요. 저도 몰라요.'

파서리에서도 똑같은 질문을 받고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한 할아버지 대뜸하시는 말씀.
'그러니까 북한 아~들(이이들)이 성주까지 드론을 보낸다 아이가? 보여야 잡아내지!!'

2017년 7월 4일 화요일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남면 은산리, 조음리, 남산리

하늘에서 본 밀양 - 상남면 기산리, 연금리

하늘에서 본 밀양 - 무안면 웅동리



웅동은 내 고향이다. 정확히는 웅동리 야촌으로, 야촌보다는 들마(을)라고 익히 부르는 동네다. 좁은 골짜기로 내 12대조부터 이곳에 들어와 살았다고 하는데 선영이 지금도 잘 모셔져 있다.
좀처럼 변화의 바람이 없는 외딴 시골인데 최근에 들마와 관동 사이에 큼직한 집이 들어섰다. 울산-함양간 고속도로 공사를 위한 현장 사무실인데 아마도 이 사무실에서는 곰골 저수지 인근에서 박산을 관통해서 장재기 쪽으로 빠져나오는 터널 공사를 맡을 모양이다. 아직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조만간에 공사가 시작되면 좁은 골짜기 동네는 북새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골짜기가 좁다보니 공기의 흐름이 골짜기를 타고 흐른다. 그래서 인근의 대규모 돈사나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와 거름냄새가 저기압일 때는 청정마을을 코로 숨쉬지 못할 만큼 휘감아버려 안타까울 때가 많다.
청정마을은 본래대로 청정하게 보존될 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세력을 만나면 차라리 고향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늘에서 본 밀양 - 시내 조망



세상에 드론이라는 물건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부터 내가 하늘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날을 기다려왔다. 지난해 학교 홍보 영상을 만들면서 그 시도를 했다. 드론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을 무렵 무리하게 구입한 드론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잡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교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어느날 제 소임은 거기까지라는 듯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이후 비슷한 모델인데 가격이 아주 싼 것을 다시 구입하였으나 이 드론은 장난감 수준에 머물렀다.
지금 쓰고 있는 드론은 세계적인 드론 제조사에서 만든 제대로 된 드론이다. 물론 가격도 만만찮다.
이 드론을 내 손에 넣자 시작한 작업이 바로 밀양 전역을 촬영하고 편집한 후 인터넷에 기존의 자료와 연결시켜 내보이는 좀 거대한 프로젝트다.
학교 주변부터 시작해서 밀양 시내까지 넓혔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꼭 완성해보고 싶은 일이다.

하늘에서 본 밀양 - 무안리

하늘에서 본 밀양 - 가곡동

하늘에서 본 밀양 - 삼문동 구시가지



요즘들어 밀양시민들은 삼문동을 두 구역으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하나는 신삼문동이고, 그렇다면 나머지는 당연히 구삼문동이 된다. 신삼문동은 1990년대만 해도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벌판이었는데, 제일훼미리 아파트를 필두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밀양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 되었다. 지금은 밀양의 중심 상권조차 이곳으로 옮겨온 듯하다.
반면에 구삼문동은 청구아파트와 대우아파트가 들어설 즈음에는 주목받는 지역이었고 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공설운동장이 있고 체육관이 있었으며, 한때 밀양군청, 밀양시청, 법원, 검찰청이 자리한 곳이기도 했다. 밀양의 오래된 학교에 속하는 밀양초등학교, 밀양중학교, 밀양여중은 아직도 이곳에 건재하고 있다.
나는 1987년 9월 진주에서의 사회 초년생 생활을 접고 이곳 삼문동으로 이사를 왔다. 아내가 밀양여중에 발령을 받았고, 나도 사학이지만 운좋게 밀양 시내의 학교로 전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먼저 발령을 받은 아내는 삼광약방 맞은편 골목 안에 셋방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내가 옮겨오면서 유성모직 정문 앞에 있던 2층집의 2층 단독 전세를 얻어 몇 달을 살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후 유성모직은 공장터를 아파트 터로 팔아 그곳에 유성청구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벽에 구멍이 뚫려 찬바람이 들어오고, 욕실은 욕조가 파손된 채 방치된 집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내이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후 다시 삼문동 제일훼미리 아파트를 얻어 복귀해서는 그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30대 초반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삼문동은 나의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시골마을에 연고가 없는 사람이 들어가 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소위 텃세라는 것 때문이란다. 기실 나는 밀양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줄곧 밀양 이외의 땅에서 살다가 다시 30대가 되어서야 밀양으로 복귀한 경우이다. 따라서 중학교, 고등학교 학연은 밀양과 상관없다. 또한 고향도 밀양이라지만 면부의 시골마을로 밀양시내가 아니라서 밀양시내 토박이들의 텃세에 밀리는 형국이다. 그래서인지 밀양은 아직도 낯선 면이 없지 않다.

하늘에서 본 밀양 - 하남읍 명례리, 백산리, 수산제



영상에는 자세히 잡혀있지 않지만, 명례 자동차 캠핑장 있는 곳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낙동강 둔치는 4대강 사업 이전에는 감자밭이었다. 그 넓이가 하도 넓어서 대한민국의 감자는 여기서 모두다 생산되는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 넓디넓은 감자밭이 지금은 일부분은 오토캠핑장으로 일부분은 수변공원으로 그리고 대부분은 그냥 버려진 땅이 되어 있다.

드론 이륙 지점 옆에서 밭일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가 내게 오시더니 '뭐하는교?' 한다.
'마을의 모습을 공중에서 찍고 있습니다. 후대에 사람들이 추억거리로 삼을 수 있게 말이죠.'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짧게 끝나고 이내 할머니의 넋두리로 넘어갔다.

"감자밭 해먹을 때가 짭잘했지.
멀쩡한 감자밭을 밀어뿌고 쑥대밭을 맨들어놨다 아이가? 쳐다볼 때마다 가슴이 아린데이.
우리야 무신 힘이 있노. 군인들까지 와서 밀어붙이는데 말이제.
공항 들어온다카더마는 그것도 맹탕 거짓말! 저기 뺄간 깃발 보이제? 도로 낸다고 몇 년 동안 꽂아놨더마는 지금은 흰 깃발이 되었뿟다 아이가?
세상에 믿을 놈 없제?"


하늘에서 본 밀양 - 밀양시청 주변

경화역공원 벚꽃비